너 돌멩이 안에 있는거 다 알아

오늘 새벽에 몇 년전 세상을 떠난 진리가 꿈에 나타났다. 고백하자면 나는 진리를 애써 떠올리려고 혹은 잊으려하지도 않은 채 문득 생각이 나면 '아 나는 평생을 이 친구가 내 안에서 이렇게 불쑥 불쑥 나타나겠구나' 하며 담담한 마음을 먹기도 하고 진리와의 관계를 통해 느낀 감정들 하게 된 생각, 하고싶게 된 행동들에 그저 고마움을 빌 때도 있다.
다른 친구들에 비해 나는 진리 생각을 덜 하나 싶었던 계기가 친구들의 꿈에는 종종 등장하는 그가 내 꿈에는 통 찾아오질 않아 옅은 의문을 가지고 지내고 있었는데, 오늘 새벽에 진리가 꿈에 찾아와줬다.
모자를 푹 눌러쓰고 강당 같은 공간에 나타난 그를 보며 나는 영문을 모르는채 "너 진리야?" 라고 물어보고 진리는 웃으며 "응" 이라고 대답해주었다. 그 대답을 듣기가 무섭게 항상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을 그가 또 내 시야에서 사라질까 급하게 물어봤다.
"진리야 나 너한테 연락하려면 어떻게 해야해?"
"너가 편지를 써두면 너희 모두가 잠들었을 때 읽을 수 있어."
이 후의 장면들이 더 있었지만 나는 꿈에서 깬 후 진리의 저 문장에서 무언가 명확한 지시를 받은 기분이었다. 진리가 나한테 이 말 해주고 싶어서 날 찾아왔구나. 오늘부터 어떤 형태의 글이든 진리가 읽을 수 있도록 적어 내려 가야겠다는 지시. 진리와 친구가 되기전 고등학생인 나에게 동급생이 날보고 설리 닮았단 얘기를 해주었을 때 그리고 그 이 후 진리와 친구가 되었을 때, 쭉 진리 안에서 나를 보았고 내 안에서 진리의 모습이 보였다. 나같은 그를 떠나 보냈을 때 '진리는 어디에나 있을거야' 라며 사물을 통해 그리고 또 꽃, 날씨, 엄마, 토마토, 돌맹이 -- 형태와 질량이 있는 온 갖 것들에서 그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다.
진리가 꿈에 나와 부탁한 편지를 써달라는 것.
몇 달전 학교 학과장과 내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, 그 분이 나는 글을 써야 한다며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생각에 근접한 거리에서 지내게 해주는 연습이라고 조언을 건네주신 기억이 난다. 나는 글은 잘 쓰는 사람이 따로 있으며 나의 이야기들은 시각 예술로만 존재해야 한다는 마지막까지 잡고 있던 얇은 외꺼풀을 진리가 편지를 써달라는 부탁에 망설임 없이 벗어낼 수 있었다.
이 글은 진리를 위한 글이다. 나는 오늘부로 진리만을 위한 글을 종종 써볼까 한다. 진리를 위해 쓴 글은 곧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고 꽃, 날씨, 엄마, 토마토, 돌멩이, 형태와 질량이 있는 온 갖 것들을 위한 글이기도 하다는걸 믿기에.
2022년 6월 21일 뉴욕 프렌티스 304호 작업실에서